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청나게 기록을 좋아했다. 사진은 모으길 바랐고, 추억이 담겨있다고 생각이 들던 작은 물건들을 모았다. 필사적으로. 그래서 초등학교 때 인도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모았던 솔방울도 두 개를 아직도 갖고 있다. 이렇게 내가 다니던 곳들에서 폴라로이드, 인화된 사진들을 다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7학년 (한국 기준 중2)부터 일기를 썼고 사실 일기 (하루의 사건을 쓰는 기록)이라기보다는 다이어리였다. 생각 정리를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었다. 어느덧 4-5권이 돼가는 내 다이어리 컬렉션.
나는 정말 글 쓰는걸 사랑한다. 내 생각, 그때의 감정, 다른 사람의 말, 다른 사람이 보내준 문자, 전화하면서 했던 얘기까지 나는 기록에 강박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기록한다. 다른 사람이 내 다이어리나 일기를 보면 조금 소름 끼쳐하지 않을까. 이런 것까지 쓴다고 싶은 것들이 꽤나 있다.
내가 기록에 이렇게나 집착하는 이유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내 전 글에서 얘기 했듯이 학창 시절에 큰 즐거움을 느낀 적이 없다. 사실 이렇게 쓰면 안쓰럽다는 반응이 나올 수는 있지만 그렇게 슬픈 얘기는 또 아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나는 기복이 크게 없다. 내가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 읽었던 얘기였는데 인간은 추억이나 느끼는 감정이 많을수록 그 시간을 더 길게 체감한다는 것이었다. (번외로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라는 시였고 죽음의 날을 맞이하는 여인의 얘기이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던 그 하루가 죽음 이후의 몇백 년보다 길게 느껴졌다고 한다.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주어진 시간이 한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추억이나 기억들이 소중하고 삶을 산다는 것을 느낀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만약 기약 없이 이어지는 삶이나 사후 세계라면 그만큼의 소중함을 담고 있기 어렵다고.) 그런 맥락에서 기복이 없어서 나는 어릴 적에 대한 기억도 별로 없고 중학교 고등학교도 굉장히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는 걸 느꼈다. 사실 대학교 들어와서도 그렇다. 할 일은 쏟아지고 약속도 많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물론 좋은 순간들이 있지만 결국 큰 감흥이 없기 때문에 다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껴지는 거 아닐까?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낸 시간은 더 길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기록에 집착을 한다. 눈 깜작 할 새에 지나가는 내 삶을 붙잡으려고. 내 머리나 기억에는 의존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기록, 일기, 사진, 영상같이 나 대신해서 그 순간을 포착해 줄 것들에 의존한다. 내가 그때 지었던 표정, 느꼈던 감정을 나보다 다른 곳에 적어두는 게 더 믿을만하다는 걸 알았다.
조금은 아쉽다. 어린 시절의 감정과 사건들에 대해서 기억을 잘 하고 이를 20년이 지나고도 어땠다고 감정을 강하게 얘기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매사에 덤덤하고 크게 좋지도 크게 나쁘지도 않다. 이걸 보고 안정적이라고 얘기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 다른 사람들처럼 삶을 그렇게 경험하고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한다. 나의 해결책은 내 그 순간의 감정들을 기록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