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들어와서 더 느끼는 거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1-1때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시간을 쓴다는 게 행복했다. 그리고 후회도 없었고, 그때는 이렇게 계속 살면 계속 행복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2-1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생각이 조금 바뀐 거 같다. 1-1 때는 내가 그런 약속들이나 사람들을 만나는 걸 원하고 있다고, 갔다 와서 집에 오면 그런 삶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속였었다. 그래서 내 삶의 주체성은 나에게 있다고 믿게 됐고 그렇게 나는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가스라이팅 했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이런 생활의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거 같다. (이것도 역시나 엄마가 맞았다)
중고등학교 때의 내 삶에 나는 항상 불만이 많았고 나는 불행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하고 말하면서 살았다. 나는 놀고 싶었지만, 사람들과 더 어울리고 싶었지만 엄마의 영향으로 인해서 나는 그런 삶을 누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던 거 같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사람들과 접촉이 많았다, 친구들도 많았고 아는 사람도 많았고 놀러 나가는 경우도 꽤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진정으로 재밌지 않았던 거 같다. 나갔다가 들어오면 힘들고 남는 건 없다는 공허함을 조금씩 계속 느꼈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 대해서 그렇게 불만이 많았던 거 같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즐거움, 친구들과 만나서 생기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지속적인 공허함과 결핍을 그저 내가 많이 못 나가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중고등학교 심지어는 대학교 들어와서 진정으로 재밌고 내가 이 시간이 재밌었던 적이 있나 싶은 순간들이 많다. 나는 정말 쉽게 질려하는 스타일 같다. 내가 자라온 배경의 영향이 없진않겠지만 나는 주변 사람들을 쉽게 바꾼다. 내가 내 사람이라고 정말 마음을 많이 주지 않는 이상 오랜 기간 만나기 쉽지 않은 거 같다.
그래서 이 얘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나는 혼자 있을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있을 때 가장 편하고 가장 행복한 거 같다. 요즘 들어 느끼는 점이다. 엄마랑 아빠랑 정말 오랜만에 통화하는데 그냥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사실 이런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도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고 아무것도 이뤄내지 않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고 싶다. 더 이상 나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는데 그런 곳과 사람에게 시간과 돈을 쓰고 싶지 않다. 나의 즐거움에 대한 기준을 조금 더 엄격하게 갖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뭐든 다 좋아 가 아니라 호불호를 확실히 해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좋은 곳에 가게 할 수 있도록.
나는 혼자가 좋다. 내가 다시 돌아보면 내가 처음에 내 자유를 설레했던 이유도 내 삶을 다채롭게 꾸리고 싶어서였다. 남들이 얘기하는 행복의 기준이나 좋은 삶의 기준 말고 내 기준에 맞춰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보고 살고 싶어서 였다. 근데 어느새 나는 약속과 남들이 얘기하는 낭만과 즐거움에 치여서 내 삶을 살고 있지 않았던 거 같다. 이제 와서 1년 반 내내 즐겨놓고 무슨 소리냐,라고 얘기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 공허할 때가 많다. 허둥지둥 내가 할 일들을 다 챙기고 기한을 지키긴 하지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내 바쁨에 대단하다는 말을 한마디씩 해주고 동시에 여유롭다는 애기도 해주고, 나도 그걸 즐기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내 여유는 이렇지 않다.
내 여유는 내 방학이다. 하루 종일 아침부터 밤까지 내 시간으로 만들어내는 방학이 내 여유이다. 바쁘지만 온전히 나를 위해서 쓰는 내 시간이 내 여유이다. 사람들을 일체 만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내 하루를 꾸릴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조차 잊은 기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려고 한다.